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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애국지사


김신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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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 애국지사, 6 · 25참전유공자 _ ‘신화의 시작’, 조국의 하늘을 지켜낸 영웅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신 (장군)지사는 1922년 중국 상하이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김구(金九)와 최준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모친의 별세로 조모 곽낙원을 의지하여 귀국했다가, 1933년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 학창시절을 중국 상하이에서 보냈다.

 김신 (장군)지사는 김구(金九) 주석과 생사를 같이하는 많은 독립투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임시정부의 비밀연락과 임정요인들 간의 주요 연락 및 정보수집 임무를 맡아서 수행하였으며 1944년 3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 ? 동년 6월에는 임정내무부원 및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중국 공군군관학교에 입교하여 운남성(雲南省)과 인도(印度) 펀잡성 라홀시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고 대일 항공전에 참가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신 (장군)지사는 8·15해방 후 아버지 김구와 함께 귀국하여 조선국방경비대에서 활동했으며, 1948년에는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특히 6·25전쟁 중에 북한군 보급로의 가장 중요한 곳인 대동강 승호리 철교를 미 공군이 500차례 출격하고도 폭파하지 못하여 대한민국 공군에 그 임무를 넘기자, 제10전투비행전대장으로 재임중인 김신 (장군)지사가 1952년 1월, ‘저공침투 비행’이라는 새로운 공격전술을 창안하여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이작전의 성공으로 전장의 흐름이 바뀌고, 한국 공군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김신 (장군)지사는 제6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내고 예편한 뒤 대만 대사, 교통부 장관, 제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후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 백범김구기념관 관장과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 전반에 크게 공헌하였다.

 정부는 김신 공군참모총장(애국지사)에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수호하는데 평생을 바친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 무공훈장(충무 · 을지 · 화랑), 청조 근정훈장(근정훈장의 제1등급), 수교훈장, 광화장 등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 377호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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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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