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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하상세


애국지사 하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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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근거한다."

1918년 3월 4일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하상세 지사는 1940년 4월 25일 일본대학을 재학할 당시 동포 유학생들을 규합하여 현상좌를 조직하였다.

이틀 후 조선어학연수회로 새롭게 개편하여 유학생간 친목을 도모함과 동시에 민족사상을 고취하는 것에 적극 앞장섰다. 하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여러 차례 경찰조사를 받게 되었고, 단체는 강제 해산당하였다.

1937년 일본은 대륙침략의 일환으로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한민족말살정책을 본격 추진하였다. 19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발발시켰고, 이런 추이 속에서 1942년 5월 한반도 징병제를 실시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을 군수물자와 자원개발에 투입하려는 목적으로 강제징용하였다.

하상세 애국지사는 강제징용에 반대하여 귀국한 후 서울로 피신하였으나 피체되었고, 1943년 원산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일본의 군수공장인 원산철도공장에서 노역동원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공장을 폭파하려다 일본 헌병대에 피체되어 같은 해 징역형을 받아 원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못 배운 민족의 한을 풀기위해 창녕지역의 유일한 여성 중등교육기관인 창녕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애국·애족·통일염원의 민족혼”을 교육이념으로 삼아 후세 양성에 힘썼다.

정부는 하상세 지사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12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제1묘역 170호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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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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