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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대장 옥만호


옥만호 공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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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만호 공군대장◑

-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성공의 주역" -

1925년 9월 2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에서 태어난 옥만호 공군 대장은 1944년 일본육군비행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공군 사관 후보생 8기로 임관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옥만호 공군대장은 전쟁기간동안 총 115회의 전투출격을 달성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활약은 한국 공군의 3대 전공 중 하나로 꼽히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이다.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은 만주를 거쳐 보급물자를 받고 있었는데, 그 길목에 평양 동쪽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 설치된 승호리 철교가 있었다. 적군의 군수물자 보급 요충지로 승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차단해야 할 길목이었기에 미 공군은 500회 이상 폭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북한군 역시 승호리 철교를 중요 요충지라 여겨 엄중한 방공망을 조성하였고, 미 공군의 폭격이 번번이 실패하게 되자 한국 공군의 임무로 넘어온다.
당시 제10전투비행전대장 김신 대령은 1952년 1월 12일, F-51 5대로 이뤄진 공군 편대를 출격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같은 날 후속 편대가 재차 폭격을 시도하나 또다시 실패하고 만다.

2차례의 실패를 분석한 결과, 8천피트 상공에서 강하하여 3천피트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전술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초저공침투공격법’이라는 새로운 작전을 고안한다. 하지만 4천피트 상공에서 강하해 1천5백피트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이 전술은 적의 대공포화에 노출되어 생명이 위험한 공격법이었다.

1952년 1월 15일 오전 8시 25분, 당시 제2편대장 옥만호 대위는 제1편대의 엄호 속에서 초저공침투 공격법을 시행하며 승호리 철교에 5백파운드 포탄 12발을 투하하였다. 철교와 적 방공 원점 뿐 아니라 포진지 6개소, 보급품 집적소 1개소, 벙커 3개소, 건물 1개 동을 파괴하는 등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성공하였고, 전 세계에 한국 공군의 위엄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휴전 이후 옥만호 대장은 제12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하면서 F-4D 팬텀기 도입 등 공군 전투기의 현대화와 전력증강 등에 힘썼으며, 전역 후에는 전 재산을 들여 무안군에 호담 항공우주전시관을 설립하여 한국 공군의 역할과 임무를 알렸다.

정부는 옥만호 공군대장의 공적을 인정하여 1952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 164호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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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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