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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지복영


애국지사 지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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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성 광복군"

1920년 4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난 지복영 지사는 1924년 어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갔다. 광복군총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딸로 태어나 일찌감치 항일운동의 길에 들어선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면서 항일운동의 최전선에 나섰으나 중일전쟁의 발발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고, 1940년 중경에 정착한 임시정부를 따라 피난을 떠났다. 피난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고 항일의식 고양을 위한 선전활동을 하는 등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조국 독립하는데 남자 여자 가리겠느냐” 아버지 지청천 장군의 광복군 입대 허락으로 지복영 지사는 한국광복군 서안총사령부로 이동한다. 광복군을 모집하고 독립운동을 알리기 위해 1941년 1월1일 발행된 기관지 [광복]의 원고작성과 번역을 담당하였다.

“한국 이천삼백만 민족의 반수를 차지한 여성 동포들이 조국을 광복하고 신 국가를 건설하는데 한 역군이라는 것을 범 한국 사람은 다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중삼중의 압박에 눌리어 신음하던 자매들! 어서 빨리 일어나서 이 민족해방운동의 뜨거운 용로 속으로 뛰어오라..”

지복영 지사는 한국인 여성의 광복군 입대를 권유하며 여성대원도 남성대원과 똑같은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군인으로서의 자질과 동지의식을 강화하여 항일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안휘성 부양에 위치한 광복군의 제3지대 본부에 근무를 하며 남성 광복군 대원들과 똑같이 낮에는 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우고, 밤에는 초모 사업에 힘을 쏟았으나 1년1개월만에 병이 나 활동이 불가해지자 중경으로 돌아왔고, 1943년부터 임시정부 외무부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이어나갔다.

정부는 지복영 지사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 456호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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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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