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공주신관초등학교 이 자 은
우리는 가을 현장학습으로 대전중앙과학관에 다녀오는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현충원으로 향했다. 현충원에 도착하고 나는 준비물이었던 헌 수건을 가지고 버스에서 내렸다. 내가 현충원에 내렸을 때, 현충원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현충원 입구에는 웅장한 ‘현충문’이 있었다. 현충원의 이름을 따서 ‘현충문’이라 지은 것 같다. 우리는 현충원에 대해 들으려고 그늘로 이동했다. 현충원에서 근무하신 분이 현충원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우리는 조용하고 근엄한 분위기 속에 그 분의 말씀을 들었다. 중간 중간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내가 들은 것은 대전국립현충원은 1976년도에 건립되었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묻힌 곳 이라는 것이다. 너무 길게 말씀하셔서 솔직히 약간 지루하고 하품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우리는 현충원 내에 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그 곳에선 6・25때 목숨을 잃은 군인들, 소방관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정말 놀라웠다.
드디어 비석을 닦을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수건에 물을 묻히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미 묻힌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며 한명에 한 술씩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곧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그 닦는 비석의 주인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기억하며 열심히 비석을 닦았다. 몇몇 장난치는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현충원에 와서까지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비석을 닦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아까운 목숨들을 잃지 않았을 텐데! 전쟁은 절대 일어나면 안된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 있는 비석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조화도 아주 많았다. 처음에는 ‘이걸 다 언제 닦나.’ 했지만 그 중에 일부, 그리고 반별로 나누고, 또 개인별로 나누니 좀 더 쉬워졌다. 비석을 닦는 중 아주 더러운 비석이 있었다. 그 주변에는 쓰레기가 있었고 비석도 무언가 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란 지푸라기 같은 것도 있고, 어떤 검빨강색 같은 무언가도 있었다. 그래서 왠지 기분이 안좋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어쩌면 연예인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분의 묘가 이렇게 되다니!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바친 그분의 비석이 방치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쓰레기를 줍고 비석을 닦았다. 순간 내가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드디어 다 닦았다. 여기에 묻힌 분들도 기뻐했으리라 믿는다. 돗자리를 깔고 비석 앞에 앉아있는 한 가족도 있었다. 아마 남편, 아니면 아들? 가족 중 누군가가 나라를 위해 돌아가셨나보다. 참 안쓰러웠다. 그 희생하신 분들이 있기에 이렇게 편하게 밥을 먹고, 자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에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불쌍한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 밖에도 전쟁 때문에 밥도 제때 못 먹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들 때문에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다. 그렇게 다 닦고 나서 우리는 그 곳을 나왔다. 그런데 나온 순간, 한 비석에 ‘이순신’이라고 써져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웃기면서도 놀라거나, 갸우뚱했다. 나는 갸우뚱하는 쪽이었다. 자신이 그 비석을 닦았다며 자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비석이 진짜 이순신 장군님의 묘일까? 세종대왕 묘나 무령왕릉처럼 말이다. 물론 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차라리 이순신 장군님 묘였으면 좋겠다. 나야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런 궁금함을 품고, 또 우리가 비석을 닦았다는 뿌듯함을 가지고 우리는 버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