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김천여자중학교 박 혜 빈
창의적 체험학습을 간다는 말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대를 하며 기뻐했어야 했다. 그런데 굳어진 내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 이유는 아마 친구들과 싸운 나 때문이었겠지. 체험학습을 가는 금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앞으로 혼자가 될 나를 생각하니 벌써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했다. 버스 안에서도 나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려서 앉은 친구로 인해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그러다 문득, 현충원이라는 곳에 갈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렇게 친구들 눈치를 보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자니 내가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하루 동안은 친구들 생각을 많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가는 곳은 현충탑이었다. 현충탑의 압도적인 규모에 한 번 놀랐고, 그 곳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조용히 참배를 하려는데 여기저기서 큭큭 대는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다.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마음이 너무 가벼운 것 같아 가슴이 아파왔다.
그 다음으로 근무교대식을 보았다. 딱딱 맞추어 칼같이 움직이는 모습에, ‘저게 바로 칼군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틴탑도 칼군무로 유명한데 언제 한 번 교대식을 보러 와주었으면 좋겠다. 차를 타고 보훈미래관으로 향하는데 매년 현충원을 방문해서 여러 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깥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고 혼자라는 쓸쓸함을 많은 국가유공자 분들이 달래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분들의 넋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뭔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상했다.
보훈미래관을 관람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실제로 전쟁당시 사용했던 장비들을 보니까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하나의 민족이 서로를 다치게 하고, 죽이기까지 했다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보훈미래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군모에 폭탄을 싸서 적진으로 뛰어든 군인이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죽어갔던 그 군인은 마지막까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남아있을 가족들과 동료를 생각하며 슬퍼했을까? 남들과는 다른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 우리나라를 원망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죽음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을까?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을 테지
마지막으로 묘역 헌화를 하기 위해 조금 걸었다. 그리고나서 헌화할 꽃인 국화를 집어 들고는, 묘비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헌화해드릴 분은 이강호님이었다. 또 다시 숙연해지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국화를 놓아 드리고 나서 묘비 뒤로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확인을 하려는데 순간 ‘순직’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묘비에도 새겨져있나,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질사’, ‘전사’라는 말에 숨이 턱, 막혀오는 느낌이 들었고, 울컥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저분들은 숨이 멎어가는 동안 얼마나 쓸쓸하셨을까? 그에 비하면 내가 지금 힘든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확고해졌다. 나의 마음이 그냥 돌아서자고 친구는 얼마든지 다시 사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마음고생하면서 매일을 그렇게 사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임이 틀림없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다잡은 마음을 갖고서 버스로 돌아가는 길에 호국장비전시장을 지나게 되었다. 전쟁 당시 사용된 탱크와 전투기들인 것 같았다. 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현충원을 찾아와 많은 것을 깨닫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금요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일이었다. 체험학습을 간다고 했을 때, ‘왜 하필 금요일일까…….’하는 속상함도 들었다. 하지만 금요일이었기에 더 많이 깨달을 수 있었고, 금요일이었기에 더 빨리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금요일에 다녀온 게 오히려 다행인 것일까? 어찌됐든, 10월 12일은 내 생애 최악의 금요일이자, 최고의 금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