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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님께 고합니다.
내용
아버님께 告 합니다 아버님! 오늘이 저희들 곁을 떠나 가신지가 벌써 여덟 해가 되는 날이고, 아버님께서 어머님을 모시고 가신지도 벌써 한 해 하고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지난 두 해는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참 힘들었던 해였습니다만, 올해 들어 따 슨 봄날이 되어서야 코로나를 억누르고 잠재워 가며 평온한 일상을 준비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버님 떠나신 이후 그간의 일들을 알려드릴 수 있게 되어 告 합니다. 아버님 저는 애들 엄마하고 가끔 시골 아버님 집에 내려와 생활하며, 아버님이 일구던 텃밭과 산밭에 과일 나무를 심고, 풀과 힘겨운 씨름을 하면서 아버님과 나누었던 지난 일들의 소회를 얘기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10여년전 제가 1,000여평이 넘는 산밭에 고구마 모종을 사와 심겠다고 했을 때 아버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해서 장비와 인부를 동원해서 밤고구마 모종을 심고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가을이 되어 잘 자란 고구마를 수확하여 서울 농산물시장에 경매하여 받은 고구마 값이 포돗이 모종값, 인건비를 제하고 남는 것이 없어 허망 했습니다만, 다음해 또 고구마를 심겠다고 했을 때는 심고가면 고구마 모종을 모두 뽑아버리겠다며 어머님께 말씀 하셨다는걸 듣고서도 고집을 부리고 고구마 모종을 심고 서울로 올라 간 후, 가을에 수확하러 내려와 산밭에 갔더니 멧돼지가 때로 내려와 고구마 밭을 갈아 뒤집어 놨었습니다. 황당했지만 아버님 말씀을 듣지 안 해 멧돼지에게 진상했다고 여기고 사실상 고구마 농사는 포기 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전우들에게 가신 후 산밭에 인삼을 심을 요량으로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하였더니, 농업박사 하는 말이 농작물도 주인 발소리 들어가며 자란다면서 첫해 고구마 농사는 아마 아버님 발소리 듣고 풍작을 했을 터이고, 다음해 멧돼지 피해는 밭주인이 고구마 밭에 관심이 없다는 걸 멧돼지들이 알아차리고 때로 몰려 온 것이라며, 농사는 농업박사도 盡人事待天命 한다면서 아버님이 자식 보는 혜안이 있으셨던 것 같다면서, 사전 준비 없이 하는 일은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라며 앞으로는 하늘만 보는 농사가 아니라, 국제정세도 봐야 한다면서 농산물 수입개방을 설명 해주었는데, 알고 보았더니 학교 후배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한 덕담 이었습니다. 지금은 지구 끝에 있는 나라가 전쟁으로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어간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고 있자니, 밀가루와 식용유, 그리고 기름 값이 올라 우리들 가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걱정들입니다. 먼 나라 전쟁도 남의 일만이 아니 라는 걸 후배가 여실히 확인 시켜 준 것 같습니다. 아버님! 시대는 변해도 살아가는 지혜는 경험에서 얻는 다는 걸 진즉 알려주려고 하셨는데도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이 자식은 아버님께서 농사를 너무 쉽게 여기는 제게 한번 쓴 실패를 경험을 해보라며 보여주신 가르침을 이제야 깨달고서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큰 손자 종필이도 미국에서 파견근무 5년을 마치고 회사의 중역으로 귀국하여 본사에서 수출 무역을 담당하며 성실하게 임하고 있고, 큰며느리도 서울 강남이란 곳에 주택도 마련하고 가끔 초청 강의도 다니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큰 증손녀 아린이도 외국인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국제 중학교에 입학 하였습니다. 작은 손자 종익이가 미국에 박사학위 받으러 4식구 떠나 간지도 벌써 4년이 다 되가나 봅니다. 7월이면 공부 끝마치고, 8월이면 연구원에 복직해야 한답니다. 미국 대학측에서는 원하면 연구직 교수로 발령도 협의한적 있지만, 국가 연구원 지원받아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의무감, 책임감을 다해야하므로 복직을 위해 귀국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대견스러운 건 큰 증손자 도하, 작은 증손녀 해솔이 벌써 영어를 자유스럽게 하고 다양한 모습의 친구들과 함께 뛰놀고, 학교 친구들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작은손자 종익 4식구 귀국하면 아버님 어머님 찾아뵙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한 죄송스런 마음을 말씀드리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배웅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큰손녀 지연이가 시집가 외 증손녀 수아를 품고 온지가 벌써 두 돌이 지나고 세 해가 되어 외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자라고 있습니다. 손녀사위 수아 아범도 착하고 성실하게 직장과 가정에 임하고 있사오니 많이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8년전 아버님께 작별 인사 올렸던 49제 추모글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5,000명 가까이 찾아주셔서 고마운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 말씀 드립니다. 국가 현충원 안식처에 영면하신 아버님의 옛 전우들의 명복을 빌어 들이며, 유공자 가족과 국가 유공자를 잊지 않고 현충원 추모마당을 방문해 아버님을 추모 해주신 국민 여러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아버님께서는 1928년 나라 잃는 백성으로 태어나 15세 어린 나이에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되어 참담한 비극을 목격하고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 오셔서 힘없는 백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민족성을 보고 느끼셨습니다. 1945년 해방 후 되찾은 나라를 바로세우기도 전에 북한이 일으킨 1950년 6.25전쟁으로 백척간두에 처한 나라를 지키고자 유엔군 40사단에 편입 포병 사수로 최 일선에서 싸워 국가를 지키셨습니다. 아버님의 그때 나이 22세 였습니다. 나라를 잃고 한 세대가 넘는 40년의 긴 세월동안 근본없이 살아온 영혼들의 삶에도, 일본에 나라 빼앗기고 격어야 했던 참담한 비극을 체험하고 목격 했기에 어린나이에 또 다시 나라 잃은 백성으로 살아가지 않으려고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키셨습니다. 전쟁터에 가면 죽는다고 입대를 거부하고, 훈련 중에 도망치고, 부대배치 받아 전선으로 가는 도중에 도망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아버님은 유엔군 보충병 편입에 스스로 지원하셔서 중공군을 생포하시는 공훈과, 포병 사수라는 명예로운 지위까지 받으셨던 영웅이셨습니다. 전투 중 왼쪽 눈을 국가에 바치고 국군으로 복귀와 동시 전역하여, 공훈과 명예까지 유엔에 남기고 아픈 추억만을 갖고 살아 돌아 오셨습니다. 아버님은 17살 어린 나이에 사할린에서의 귀환, 25살 청년 되어서는 6.25 전쟁 영웅으로 생환 하셨습니다. 그러한, 아버님 10년 세월의 파란 만장한 성장 통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호국영웅들의 명예는 진즉 외면당하고 있지는 않는지, 세월이 가다보면 역사도 그렇게 잊혀지고, 퇴색되어 변해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해방 후 친일 앞잡이 순사들의 신분세탁과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6,25전쟁 중에는 공산주의를 선동하고 살아남아 북한군에 부역한자들, 국가의 부름을 거부하고 도망해서 살아남은 도망자들이 어느날 면죄부를 받고 참전 유공자로 둔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립 현충원에 계신 호국영웅들은 어떻게 지켜보고 계실지 국가는 알아야 합니다. 북한군 부역자와 도망자까지 호국영웅으로 둔갑시켜 놔눠 갖는 전시품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하고 있는 보훈의 명예가 우리 후손들은 안타깝게 여길 뿐입니다. 아버님! 이제는 이런 나라 걱정 후손 걱정 그만 하시고, 전역 이후 잊고 지낸 전우들과의 늦은 만남 이지만 천천히 회포도 푸시고 깊은 우정 오랫동안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도록 어머님과 함께 부디 극락왕생 하십시오. 2022년 5월18일 소자 원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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