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황과 증손자의 일화 ◀ 이황의 손자인 안도가 아들 창양을 데리고 성균관에 유학하고 있을 때다. 창양이 출생한지 6개월만에 손자며느리가 딸을 잉태하여 젖이 끊기게 되었다. 오늘과 같이 우유로 아이를 키우는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아기를 키우기가 매우 힘들었고, 창양은 영양실조로 별별 병을 다 앓았다. 그래서 도산 본댁에 유모를 구해 보도록 부탁하였다. 마침 딸 낳은 여자 종이 있어서 아기를 떼어놓고 서울로 올라오도록 일을 추진하고 있을 때 퇴계가 낌새를 알게 되었다. 시어른의 엄한 법도를 알면서도 미리 아뢰지 않은 것은, 챵양을 출산했을 때 ‘우리 집에 이 보다 더한 경사가 없다.’라고 기뻐하였으므로 증손자를 위한다면 어떤 일이든 묵인해 주리라 믿고 나중에 알리려고 하였던 것이다. 퇴계는 이 일을 알고 엄히 꾸짖어 중지시켰다. 그리고 ‘근사록’의 말을 인용하면서 편지를 썼다. “몇 달 동안만 밥물로 키운다면 이 아이도 키우고 서울 아이도 구할 수 있다. 어린 아이를 떼어놓고 가는 그 어미의 마음은 오죽하겠으며 서울까지 가는 동안에 이 아이는 죽고 말 것이고 젖도 막히게 될 것이다. 내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다. 어미가 자식 키우는 정은 짐승도 마찬가지인데 학문을 한다는 유가의 체통으로 차마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더냐! 몇 달을 참으면 두 아이를 다 구할 수 있으니 여기 아이가 좀더 자랄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그 때 가서 데리고 가도록 하마.” 하고 손자를 타일렀다. 그 후 겨울과 봄은 어렵게 넘겼지만 창양은 증조부를 보지도 못한 채 죽고 말았다. 퇴계는 그 아픔을 가족들에게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으나, 여러 문인들에게 아픈 심정을 여러 번 토로하였다. 퇴계의 평등사상은 당신의 증손자를 잃으면서까지 하인의 딸을 살렸고, 어미가 자식을 키우는 사랑과 천륜은 사람의 귀천에 차별이 없음을 행동으로 가르쳐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