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무릅쓰고 간신들을 비판한 백인걸 ◀ 백인걸은 조선 선조대의 인물로 직제학, 대사간, 대사헌 등의 청직(淸職 :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호는 휴암이며 사림계 인물들과 널리 교류하며 청렴하고 결백한 인물로 유명했다. 백인걸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야만 했다. 백인걸의 어머니는 바느질품을 팔아 집 한 칸에서 겨우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살던 집마저도 연산군이 사냥터를 늘리면서 철거당했기 때문에 셋방을 얻어 살아야만 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어머니는 백인걸의 교육에 온 정성을 쏟았고, 그는 조광조와 김안국 등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에게서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백인걸은 판이한 성품의 친구들과도 먹역한 사이가 될 정도로 친구에 대해서는 관대했으나, 자신에게 만큼은 매우 엄격했다. 하루는 막역한 친구 한명인 허자가 백인걸을 걱정하여 밀지(密旨)로 인한 업무처리 논란이 조정에서 곧 있을 예정이나 늙은 어머님을 생각해 참여하지 말도록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백인걸은 이를 거절하며 대답하였다. “내 어찌 국사를 두고 사사로이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여 나라 일을 그르칠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네.” 백인걸은 다음 날 홀로 상소를 올려 “나라 일은 마땅히 공명정대하게 처리함이 옳은 것입니다. 조정에서 의논도 없이 밀지를 받아들여 행하는 일은 후세에서 어떻게 볼 것이며, 이를 본보기로 간신들이 암암리에 선동을 꾸미어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병폐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비판하여 문정왕후가 대노하여 백인걸을 하옥하고 죄를 물었다. 이러한 청렴결백으로 백인걸은 선조 대에 청백리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그가 가난했기 때문이 아니었으며 결백한 성품으로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릴 줄 알고, 국가의 시급한 과제를 직시할 줄 아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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