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의 청렴 ◀ 32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훈련원 감독관으로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순신에게 어느 날 병조정랑 서익이 자신의 친지를 특진시켜 달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뚜렷한 공로도 없이 승진을 시키는 것은 나라의 법도에 어긋나며, 응당 승진해야 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라며 거절하였습니다. 36세 전라좌수영 관내에서 근무하게 된 이순신은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 박이 거문고를 만들고자 객사 뜰 앞의 오동나무를 베라고 시키자, “이 나무는 나라의 것이니 사사로이 밸 수 없습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그의 청렴함 때문에 상사와 트러블을 만들게 된 이순신은 결국 앙심을 품은 사람들의 모함에 걸려 파직을 당하고야 맙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당대의 대학자 유성룡이 찾아와 당시 이조판서였던 이율곡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으나, 이순신은 “나와 율곡은 성이 같은 까닭에 만나볼 만도 하지만, 그가 관직에 있는 동안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라며 거절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이후 4개월 만에 다시 훈련원 감독관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부임 직 후 그에게 우의정 유전이 다가와 그이 화살통을 탐내며 달라고 하자 이순신은 “드리기는 어렵지 않으나 이 일로 대감과 제가 더러운 소리를 들을까 두렵습니다.”라고 거절하였습니다. 어떤 부정과 불의에도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성웅 이순신! 그가 영웅이 된 것은 혁신적인 전략과 전술 때문이었지만, 불리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랐던 이유는 그이 청렴함 때문이었습니다. “장부로서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 쓰이면 죽기로써 최선을 다할 것이며, 쓰이지 않으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충분하다. 군세에 아부하여 한때의 영화를 누리는 것은 내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바이다.” - 「난중일기」 영웅은 승리를 만들고, 영웅을 만드는 것은 청렴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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