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흥의 정직함과 엄격함 ◀


 “국법에 어긋나면 친구라도 눈감아 줄 수 없다.”
 홍흥은 1424년에 태어나 성종 때 여러 관직을 거치며 강직한 성품과 늠름한 풍채에서 풍기는 위엄 때문에 조정에서나 민간에서나 모두 그를 두려워..."> ▶ 홍흥의 정직함과 엄격함 ◀


 “국법에 어긋나면 친구라도 눈감아 줄 수 없다.”
 홍흥은 1424년에 태어나 성종 때 여러 관직을 거치며 강직한 성품과 늠름한 풍채에서 풍기는 위엄 때문에 조정에서나 민간에서나 모두 그를 두려워..." />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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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렴공감편지
작성일 2015-08-17 조회수 115

▶ 홍흥의 정직함과 엄격함 ◀


 “국법에 어긋나면 친구라도 눈감아 줄 수 없다.”
 홍흥은 1424년에 태어나 성종 때 여러 관직을 거치며 강직한 성품과 늠름한 풍채에서 풍기는 위엄 때문에 조정에서나 민간에서나 모두 그를 두려워했고, 어느 누구도 감히 사사로운 일로 청탁하지 못하였다. 그는 당시 터럭하나 건드릴 수 없던 권신인 임사홍(任士洪)과 한명회(韓明澮)를 논박하여 백성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홍흥의 거침없는 비판은 그의 친구 이육(李陸) 사이의 일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홍흥은 이육 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고 벼슬도 그만큼 높았지만, 이육의 문장을 높이 사서 서로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육이 사랑채를 새로 지으려고 터를 잡고 달구방아를 찧으면서 요란하게 공사를 하였다. 이 모습을 본 홍흥은 관아에 출근하는 길에 그 집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가서 너의 주인에게 전하거라. 나라에 떳떳한 제도가 잇는 것이니,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는 점이 있으면 마땅히 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홍흥이 퇴근하면서 보니 이육이 제도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헐고 너무 높이 세운 기둥을 잘라 한자 한 치도 어기지 않았다.   이는 세종대왕 때부터 소위 ‘간각지수의 법칙’이 있어 일반 백성이나 벼슬아치들이 지나치게 호화로운 집을 짓는 것을 나라의 법으로 막았던 것과 관련이 있다. 아무리 친구일지라도 관직에 있는 자로서 법을 어기는 행위를 홍흥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홍흥의 정직함과 엄격함은 청렴의 모범이 되어 성종이 자주 명나라 사신으로 보내어 우리나라의 인물로 자랑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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