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곧은 성품 유의 ◀


 유의(柳)는 영조 10년(1734)에 태어나 홍문관에서 근무하였고, 1797년에는 홍주목사로 재직하였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는 매우 철저하여 사소한 청탁도 받지 않았고, 절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허...">  ▶ 올곧은 성품 유의 ◀


 유의(柳)는 영조 10년(1734)에 태어나 홍문관에서 근무하였고, 1797년에는 홍주목사로 재직하였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는 매우 철저하여 사소한 청탁도 받지 않았고, 절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허..." />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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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9-07 조회수 152

 ▶ 올곧은 성품 유의 ◀


 유의(柳)는 영조 10년(1734)에 태어나 홍문관에서 근무하였고, 1797년에는 홍주목사로 재직하였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는 매우 철저하여 사소한 청탁도 받지 않았고, 절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정약용이 유의에게 말했다.
“나라의 일에 있어 단 하나의 어그러짐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유의가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나를 홍주의 목민관으로 임명하신 뜻은, 홍주의 백성을 나에게 맡겨 그들을 구휼하고 비호하도록 하신 것이네. 조정에 있는 고관의 부탁이 비록 무겁기는 하나 어찌 임금의 명령보다 높겠는가? 만일 내가 편파적으로 한 사람만 찾아보고 특혜를 준다면 이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한 사람의 사사로운 명령을 받드는 것이니 내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는가!”
  정약용이 이를 듣고 감복해서 말을 잇지 못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정약용이 편지를 올려 공무를 의논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후에 홍주에 가게 되자 유의에게 답장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유의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나는 홍주의 목사로 있으면서 단 한번도 편지를 뜯어본 적이 없네.”
“이러한 편지야 물론 뜯어보지 않는다지만 저의 편지는 공무와 관계된 것인데 어찌 뜯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공문을 보내면 될 것이지, 왜 사사로이 편지로 보낸단 말이오.”
“그 일이 비밀에 속한 것이기에 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한 것입니다.”
  그러자 유의가 정약용을 나무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비밀리에 공문으로 보내면 될 것이 아닌가?”
  유의가 청탁을 끊어버리는 것이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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